Issue & Trend

KMAC가 전하는
CS Insight와
다양한
소식을 만나보세요

인사이트

고객을 이해하는 기업보다 고객이 신뢰하는 기업으로

2026.09.30

서민원 한국능률협회컨설팅 기업가치진단본부 본부장

AI와 데이터 기술은 앞으로도 기업의 고객 이해 능력을 계속 발전시킬 것이다. 그러나 고객을 이해하는 능력은 CX 경쟁력의 출발점일 수는 있어도 그것만으로는 충분한 차별화가 되기 어렵다. AI 시대, CX가 지향해야 할 방향은 고객을 가장 많이 이해하는 기업이 아니라, 고객이 가장 신뢰하고 다시 선택할 수 있는 기업이다.

AI와 데이터 기술의 발전은 고객경험(CX)의 패러다임을 빠르게 바꾸고 있다. 과거 기업은 고객을 이해하기 위해 고객만족도 조사, VOC, 인터뷰, 구매 데이터 등을 활용했다. 그러나 이제는 AI를 통해 고객의 행동과 맥락을 실시간으로 분석하고, 앞으로의 니즈까지 예측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기업이 고객을 파악할 수 있는 범위는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넓어졌다. 고객이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지점에서 불편을 느끼는지, 어떤 상품과 서비스에 관심을 보이는지까지 더 빠르고 정교하게 읽어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고객을 더 잘 이해하게 된 만큼 고객경험도 더 좋아졌을까. 반드시 그렇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AI와 데이터가 CX의 핵심 수단으로 자리 잡으면서 기업에는 오히려 새로운 질문이 제기되고 있다.
이제 질문은 “고객을 얼마나 잘 이해하는가”에 머물지 않는다. 앞으로의 CX 경쟁력은 “고객이 우리 기업을 위해 행동할 것이라고 얼마나 믿는가”에서 시작될 것이다. AI 시대의 CX 경쟁력은 ‘이해’가 아니라 ‘재선택 가능한 신뢰’에서 결정된다.

고객 이해의 상향 평준화, CX 경쟁의 새로운 출발점

고객을 이해하는 것은 오랫동안 CX의 출발점이었다. 기업은 고객 조사를 통해 만족과 불만족의 이유를 파악하고, VOC를 통해 고객의 문제를 발견하며, 구매 데이터를 통해 고객의 행동과 선호를 분석해 왔다. 이를 바탕으로 상품과 서비스를 개선하고 고객에게 더 나은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 CX의 기본적인 선순환 구조였다.
그러나 AI의 등장은 이 구조를 바꾸고 있다. 고객 데이터의 분석과 활용이 자동화되고, 고객별 행동 패턴을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게 되면서 ‘고객을 이해하는 능력’ 자체가 점차 상향 평준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중요한 변화를 의미한다. 과거에는 고객을 더 많이, 더 깊이 이해하는 기업이 경쟁우위를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앞으로는 많은 기업이 일정 수준 이상의 고객 이해 역량을 갖추게 될 가능성이 높다. 고객을 이해하는 능력은 더 이상 차별화의 최종 지점이 아니라, 경쟁에 참여하기 위한 기본 조건이 되고 있다.
결국 경쟁의 초점은 고객 이해(Customer Understanding)에서 신뢰 기반 가치 창출(Trust-based Value)로 이동할 수밖에 없다. 고객을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는지가 아니라, 고객에 대한 이해를 어떻게 고객이 체감할 수 있는 가치와 경험으로 전환하는지가 중요해지는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반드시 고려해야 할 요소가 있다. 바로 신뢰(Trust)다.

신뢰는 ‘예측 가능한 행동’에서 만들어진다

그렇다면 고객이 기업을 신뢰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신뢰는 단순히 기업을 좋아하거나 기업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갖고 있다는 뜻이 아니다. 고객이 기업을 신뢰한다는 것은 앞으로 이 기업이 어떻게 행동할지를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다는 의미에 가깝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기업이 어떤 태도를 보일지 알고 있다면 고객은 불확실한 상황에서도 그 기업을 선택할 수 있다. 반대로 평소에는 고객 중심을 강조하면서 정작 문제 상황에서 약관이나 규정을 앞세워 책임을 회피한다면 그동안 쌓아온 신뢰는 쉽게 흔들릴 수 있다.
결국 신뢰는 기업이 완벽하기 때문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서도 기업이 일관된 기준으로 고객을 대할 것이라는 믿음에서 만들어진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고객은 기업의 행동만 평가하지 않는다. 그 행동의 이면에 어떤 의도가 있는지도 함께 판단한다. 기업이 고객 데이터를 활용해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할 때도 마찬가지다. 그것이 고객에게 더 적합한 혜택과 해결책을 제공하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기업의 판매를 늘리기 위한 것인지에 따라 고객이 받아들이는 경험은 달라진다.

AI 시대, 고객이 원하는 것은 ‘믿을 수 있는 서비스’

AI 시대의 CX에서 중요한 것은 AI를 도입했는지 여부가 아니다. AI를 통해 고객의 문제를 얼마나 더 정확하고 책임 있게 해결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많은 기업이 AI를 고객 응대의 자동화 수단으로 활용하며 대기 시간을 줄이고 인적 서비스 효율을 높이고 있지만, AI 활용의 목적이 단순히 처리 속도 향상에만 머문다면 고객이 체감하는 신뢰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고객이 원하는 것은 빠른 응답 그 자체가 아니라, 자신의 문제가 정확하게 이해되고 필요한 순간 책임 있는 해결로 이어지는 경험이다. 따라서 AI는 인적 서비스를 대체하는 기술이 아니라 고객 대응의 정확성과 일관성을 높이는 도구로 설계되어야 한다.
예컨대 SK텔레콤은 AI가 고객 문의와 상황을 분석해 상담원에게 필요한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사람의 고객 대응 역량을 높이는 방향으로 AI를 활용하고 있다. 삼성전자 역시 AI 답변 추천과 AI 원격진단을 통해 고객의 증상을 보다 정확히 이해하고, 일부 제품 문제를 더 빠르게 해결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결국 AI 시대의 CX 경쟁력은 자동화 수준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고객 입장에서 필요한 순간에 얼마나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고, 얼마나 책임 있게 지원받으며, 얼마나 자연스럽게 사람의 도움과 연결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AI는 고객을 사람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장치가 아니라, 고객이 더 신뢰할 수 있는 해결 경험에 가까워지도록 돕는 기술이어야 한다.

신뢰는 관계를 지속시키는 기반이다

신뢰의 중요성은 고객경험 데이터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KCSI를 통해 다양한 산업의 고객경험을 살펴보면 신뢰와 전반적 만족도는 밀접하게 연결되어 나타난다. 이는 고객이 특정 상품이나 서비스에 만족하는 것과 기업 자체를 신뢰하는 것이 별개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고객은 한 번의 좋은 경험만으로 기업을 신뢰하지 않는다. 신뢰는 수많은 경험이 반복되는 과정에서 형성된다. 기업이 약속한 것을 지키는지, 문제가 발생했을 때 제대로 대응하는지, 고객에게 불리한 상황에서도 같은 기준을 적용하는지와 같은 작은 경험들이 축적되면서 기업에 대한 판단이 만들어진다.
따라서 신뢰는 단순히 여러 CX 평가 항목 중 하나로 보기 어렵다. 신뢰는 고객과 기업의 관계를 지속시키고, 다양한 CX 활동이 고객에게 의미 있게 받아들여지도록 만드는 기반에 가깝다.
기업이 아무리 고객의 니즈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새로운 서비스를 빠르게 출시하며, AI를 통해 고객경험을 고도화하더라도 고객이 그 기업의 행동을 믿지 못한다면 이러한 노력은 일회성 경험에 머물 수 있다.
반대로 고객이 ‘이 기업이라면 나를 이해하고 문제가 생겨도 책임 있게 대응할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된다면 작은 불편이나 일시적 문제에도 관계는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결국 신뢰는 고객이 다시 기업을 선택할 수 있는 심리적 근거가 된다.

고객 이해를 넘어, 고객이 다시 선택할 수 있는 기업

AI와 데이터 기술은 앞으로도 기업의 고객 이해 능력을 계속 발전시킬 것이다. 고객의 니즈를 예측하고, 행동을 분석하며, 개인에게 최적화된 경험을 제공하는 능력은 더욱 정교해질 것이다.
그러나 고객을 이해하는 능력은 앞으로 CX 경쟁력의 출발점일 수는 있어도 그것만으로는 충분한 차별화가 어렵다. 고객은 더 이상 기업이 자신을 알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머물지 않는다. 그 이해가 자신에게 어떤 가치로 돌아오는지, 문제가 발생했을 때 기업이 어떤 태도로 대응하는지, 그리고 그 과정을 믿을 수 있는지를 기준으로 기업을 다시 선택한다.
결국 기업이 새롭게 고민해야 할 질문은 “우리는 고객을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는가”가 아니다. 바로 “고객은 우리가 그 정보를 어떻게 활용하고, 문제가 생겼을 때 어떻게 행동할 것이라고 믿는가”다.
만족은 ‘좋았다’라는 감정이고, 신뢰는 ‘믿을 수 있다’라는 판단이다. 그리고 관계가 충분히 쌓인 기업에 대해 고객은 한 단계 더 나아가 ‘다시 선택해도 괜찮다’라는 확신을 갖게 된다.
이것이 AI 시대, CX가 지향해야 할 방향이다. 고객을 가장 많이 이해하는 기업이 아니라, 고객이 가장 신뢰하고 다시 선택할 수 있는 기업인가. 앞으로의 CX 경쟁력은 결국 그 지점에서 결정될 것이다.